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톈안먼 사열대의 시진핑 국가주석 곁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다. 201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 자리에 섰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출범 후 숨 가쁘게 달려온 몇 주간의 외교 일정이 3일로 일단락된다. 지난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컸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임기 동안 협의를 뒷받침해 나갈 정상 간 신뢰를 구축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일각의 ‘친중 좌편향’ 인식도 해소했다. 워싱턴에 앞서 도쿄에 들른 것이 주효했다.
둘째, 오랫동안 한국 외교의 발목을 잡았던 ‘전략적 모호성’ 논란을 끝냈다. 이 대통령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을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분법이나 흑백논리가 아니다. 애초 ‘안미경중’은 정책이라기보다 세계화와 동아시아 분업 체계의 결과물이었다. 지금 세계화는 역전되고, 한국과 중국은 시장과 가치 사슬에서 격렬하게 부딪친다. ‘중국제조 2025’의 성공으로 ‘경중(經中)’은 설 자리가 좁다.
셋째, 북한을 외교 무대로 나오게 하고 김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냈다. 미국의 압박에 중국은 전반적 대응 체계 정비가 필요했고, 북한은 종심 깊은 배후가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은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온 날 발표됐다.
한미 정상회담과 김정은의 방중은 한국 외교 앞의 엄중한 과제를 말한다. 먼저, 한미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을 구체화해야 한다. 여기가 풀려야 다른 과제도 쉬워진다. 미국 제조업 재건과 한국 일자리 창출에 모두 도움이 되는 ‘윈윈 공식’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트럼프의 협상은 거칠다. 거대 시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묻는다. “너는 어떤 카드를 갖고 있느냐?” 상호 보완성과 역할 분담이 키워드다.
다음은 한중 관계다. 이 대통령은 “중국과 절연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은 한국의 ‘균형 외교’, 즉 미중 사이에 새로운 좌표 설정을 주문한다. 과거에는 ‘구동존이(求同存異)’ 한마디로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략적 모호성을 걷어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전략적 자율성은 기교가 아니라, 인내와 투쟁으로 얻는 자산이다. 주한미군에 기지 소유권을 넘기고 빠져나갈 수도 없다. 전략적으로 북한을 지금 자리에 묶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북 관계 설정이다. 우리에게 남북은 특수 관계지만, 북한은 “서로 모른 채 살자”고 한다. 그런데 뜯어 보면, 말이 다르지만 남북이 바라보는 방향은 같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극과 극을 오가는 대북정책이다. 이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정치권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달 12일 한미 정상회담 발표부터 회담 개최까지 한국의 외교는 정교하게 움직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올해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로 잇는 것이 올해의 마지막 숙제다. 2019년 이후 트럼프-시진핑의 첫 대면 회담이 여기서 열릴 수 있다. 한반도 정세도 변화의 단초를 보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한반도 문제 논의에 열려 있다. 북한은 대화에 쉽게 나서려 하지 않겠지만, 최근의 전략적 위상 강화를 배경으로 어떤 형태로든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 것이다.
북한은 8·15 직후 이 대통령을 향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위인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시작해 보지도 않고 할 말은 아니다. 김정은도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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