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정민]젠슨 황도 걱정하는 전력난… ‘뉴노멀’이 된 원전 회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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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2일 대만을 찾아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회사인 TSMC 관계자들과 만났다. 엔비디아 제품의 상당수는 TSMC에서 생산된다. 황 CEO는 취재진에게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을 위해 여러 형태의 에너지가 개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하루 뒤 대만에서는 석 달 전 폐쇄된 남부 마안산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전체 투표자의 74%인 약 434만 명이 찬성해 반대(약 151만 명)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찬성표가 전체 유권자의 25%(약 500만 명)를 넘어야 한다는 법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부결이었다. 그러나 원전 재가동을 바라는 민심이 상당함을 보여줬다. 대만 언론들은 황 CEO의 하루 전 발언 또한 원전 재개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풀이했다.

대만은 한국,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1980년대 총 6기의 원전을 운영했다. 당시 대부분의 전력을 원전에서 충당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환태평양지진대에 위치한 대만 원전의 안전 우려가 고조됐다.

2016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집권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 또한 탈(脫)원전 정책을 적극 시행했다. 이 여파로 6기의 원전이 모두 폐쇄됐고 현재는 천연가스, 석탄 등 화력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탈원전이 시작된 후 대만은 만성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6월에도 엔디비아, 폭스콘 등이 있는 타이베이의 네이후 과학단지에서 정전이 발생해 3000여 개 입주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졌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특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TSMC의 전력 소비량은 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의 8%를 차지한다. TSMC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를 대량 생산함에 따라 2030년에는 이 비중이 24%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거의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화석 에너지에만 의존하기엔 국가 전체의 위험 부담이 크다.

대만 경제는 반도체 업계의 실적 호조 덕에 올 2분기(4∼6월)에 지난해 2분기보다 8.0% 성장했다. 중국이 사실상 장악해 자본 및 인재 유출이 심각한 홍콩, 전 분기 대비 기준으로 올 1분기(1∼3월)에는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고 2분기 성장률 또한 고작 0.6%에 그친 한국과 대조적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뒷받침됐다면 대만 경제가 8%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원전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에너지보다 경제성이 우수하고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점도 자명하다. AI 시대의 도래,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기후 변화 여파 등으로 이탈리아 벨기에 리투아니아 덴마크 스웨덴 등 탈원전을 추진했던 유럽 주요국 또한 최근 속속 ‘원전 회귀’를 선언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 확률이 지극히 낮은 원전 사고만을 이유로 원전 반대를 외치는 일각의 주장은 그야말로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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