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후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혐의에 대한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2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수사를 받기 시작한 이래 9년 가까이 짊어져야 했던 사법 리스크를 상당 부분 털어내게 됐다. 검찰로선 무리한 기소로 한국 대표기업 총수의 발을 묶어 경영 차질을 초래하고, 경쟁력을 약화시킨 데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고등법원은 어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이 회장이 주가를 조작하고, 회계분식을 했다는 등 19개 혐의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전부 기각했다. 두 회사의 합병이 승계, 지배력 강화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볼 수 없고, 불법적인 조치도 없었다는 1심 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상고 여부에 대한 검찰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사실관계를 다루는 1, 2심에서 모든 혐의를 벗은 이상 향후 다른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제는 사법 리스크로 야기된 리더십 부재, 그로 인한 신성장동력 투자·인수합병(M&A)의 무산 등 기업이 받은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검찰 수사 이전 압도적 선두를 지키던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등 다수의 사업에서 경쟁력을 급속히 끌어올린 중국 경쟁업체의 도전을 받고 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선 존재감이 약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포문을 연 관세전쟁으로 인해 경쟁력 회복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총수의 사법 리스크는 그 자체로 기업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검찰은 수사 개시 후 이 회장을 두 차례 소환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구속 사유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 2020년엔 자문기구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10 대 3의 압도적 의견으로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하라”고 권고했지만 역시 기소를 강행했다. 당시 수사팀장은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불구속 기소 후 이 회장은 대통령 해외순방 동행 등을 위해 빠진 걸 제외하고 1심 공판에 96차례, 2심 공판에 6차례나 출석했다. 3년 반 만에 나온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법조계에선 검찰의 ‘기계적 항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들끓었는데도 항소했지만 다시 ‘모두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수십 년의 글로벌 경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내외에서 이중·삼중의 감시를 받으며 투명성과 준법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그런데도 검찰은 여전히 대기업을 수사를 통해 손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시대착오적 ‘검찰 지상주의’가 기업의 손발을 묶을 때 그 피해는 기업과 기업인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국민 다수에게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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