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이 깜짝 놀랄 만한 경제 성적표를 연이어 내놨다. 2분기 성장률은 8.0%로 한국(0.7%) 일본(0.3%) 싱가포르(3.1%) 등 주변국을 압도했고, 지난달 수출액은 1년 전보다 34% 급증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대만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4.5%로 올려 잡았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대만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실화하면 22년 만의 역전이다.
대만 정부는 내년에는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처음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발 관세 폭풍에 주요 수출국이 고전하는 것과 딴판이다. 대만은 앞서 미국 정부가 부과한 상호관세를 당초 32%에서 20%로 하향 조정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4%대 고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와 안보 환경 등이 비슷한 대만의 국민소득이 한국을 추월할 수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꽃인 인공지능(AI) 붐에 제대로 올라탔기 때문이다. 간판기업 TSMC는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의 AI 칩을 생산하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70%를 휩쓸고 있다. TSMC 외에도 반도체 부품·장비·설계 등에서 다수의 혁신 기업이 쏟아져 AI 생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위해 대만 정부는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21년 대가뭄 때 농업용수를 끌어다 TSMC 공장에 우선 공급했을 정도다. 산업계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자 대학에 6개월마다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뽑도록 했다.
이와 달리 한국은 11년째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벽에 갇힌 데다 0%대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4만 달러 도약은 2029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진단이다.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중 8개가 20년째 그대로일 정도로 새로운 산업을 키우지 못한 탓이 크다. 새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지만, 경제 체질을 바꿀 구조개혁이나 기업 활성화 전략은 보이지 않아 우려스럽다. 혁신 역량을 지닌 기업이 끊임없이 배출돼 AI 대전환을 이끌 수 있도록 기업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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