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협력 걸림돌 ‘해외건조 제한법’
美 “행정명령 등 통해 우회” 韓에 알려
韓서 선체 등 생산뒤 美서 최종 조립
내달 실무진 첫 회의 ‘마스가’ 급물살
李대통령, 美 필리조선소 방문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이 힘을 모아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기적을 현실로 빚어내자”고 했다. 필라델피아=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미국 정부가 ‘번스-톨레프슨법(Byrnes-Tollefson Amendment)’을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등을 통해 한미 조선 협력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선박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한국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실무진 간 첫 회의가 다음 달 열릴 예정이다.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 해군부는 이달 초 우리 정부와 만나 미 해군력 강화를 위한 군함 건조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이런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방위사업청과 미 해군부는 행정명령 등에 담길 구체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워킹그룹 회의를 다음 달 중순 미 현지에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번스-톨레프슨법’은 미국 군함이나 군함 선체(hull), 주요 구성품을 해외에서 건조할 수 없다고 규정한 법이다. 미국 내 항구 간 화물 운송에는 미국산 선박만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존스법(Jones Act)’도 한미 조선 협력을 막는 대표적인 규제로 꼽혀 왔다. 미국과 중국의 군함 건조 능력 격차로 미국의 해군력이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미 의회는 최근 선박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하지만 미국 내 반대로 이른 시일 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들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한시적 행정명령을 마련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
행정명령에는 한국에서 함수와 함미 등 군함의 각 블록을 생산한 뒤 이를 미국으로 보내 미국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 군함 블록의 한국 생산이 가능해지면 전투함에 비해 보안 관련 기준이 덜 엄격한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이 우선 생산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해양청이 발주한 국가 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 명명식에 참석해 한미 조선 협력 강화 의지를 밝혔다.
“미국은 한국에서 선박을 살 것이다. 동시에 미국에서 미국 인력을 활용해 직접 선박을 만들도록 할 것이다.”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현행 미국의 ‘번스-톨레프슨법’과 ‘존스법’에 따르면 미국은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된 군함이나 상선을 구매할 수 없다. 미 군함이나 군함에 들어가는 주요 구성품은 해외에서 건조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선박을 구입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이 같은 선박 규제를 우회할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 해군부는 이달 초 한국 정부에 번스-톨레프슨법을 우회할 수 있는 행정명령 발동 등이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선박 규제와 관련해 “예외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 개정 없이 한국이 미국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우회 조치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방위사업청과 미 해군부는 다음 달 중순 미국 워싱턴에서 조선업 협력을 위한 규제 완화 방안을 논의하는 워킹그룹 회의를 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군함 확보가 시급한 미 행정부가 이르면 올해 안에 번스-톨레프슨법 개정 효과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급속히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현재 296척인 보유 함정을 2054년까지 381척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매년 퇴역하는 함정 등을 고려하면 향후 30년간 364척을 신규로 건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낙후된 미국 조선소로 인해 한국, 일본 등과의 협력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미 의회에는 존스법을 폐지하거나 한국과 일본에 대해선 예외를 두는 법안 등 선박 건조 관련 규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다만 미 의회 내에서도 이들 법의 폐지나 개정에 대한 반대가 상당하다. 또 국내 기업들의 미국 조선소 인수 역시 시설 확장 등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당장 한국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한시적 행정명령을 통해 우회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명령을 통한 규제 우회 방안으로는 한국에서 빈 선체를 조립한 뒤 미국으로 보내 미국에서 장비와 무장을 장착하고 조립하는 방안과 군함을 함수와 중앙부, 함미 등으로 나눠 한국에서 ‘블록 모듈’ 형태로 제작한 뒤 미국에서 조립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현행 번스-톨레프슨법에 따르면 블록 모듈도 해외 건조를 금지하는 주요 구성품에 해당돼 행정명령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 소식통은 “과거부터 우리 정부는 미국에 한미 조선 협력 중 군함 건조 협력을 4단계로 나눠 1단계 부품 생산, 2단계 블록 모듈 생산, 3단계 빈 선체 건조, 4단계 군함 전체 건조 등으로 진전시킬 것을 제안했다”며 “현재 미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등 한미 조선업이 상생하면서도 미군 군함 건조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2단계 방안”이라고 했다.
미 해군의 군함 확보가 시급한 만큼 미 정부가 행정명령을 발동하면 군수지원함 여러 척을 한국에 주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투함 등은 군사 기밀 노출 등을 우려해 미국에서 생산하되 급유함이나 구난함 등 보안 우려가 덜한 군함들이 우선적으로 한국에서 건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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