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주년] 〈10〉 지역이 ‘에너지 복지’ 바꾼다
태양광 발전 특수목적법인 투자
분기별 1인당 39만원 ‘햇빛연금’… 하반기엔 해상풍력 ‘바람 연금’도
30, 40대 인구 유입되며 지역 활기… 지역소멸 위기 새 해법으로 떠올라
“에너지 기본소득 1조 시대 열 것”
전남 신안군 안좌면 자라도 태양광 집적화 단지.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 특수목적법인에 투자자로 참여해 수익금 중 일부를 1년에 4차례 연금으로 받는다. 재생에너지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전남형 에너지 기본소득 모델의 대표 사례다. 전남도 제공
“햇빛이 저한테 연금 주는 날이 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전남 신안군 지도읍 사옥도에 사는 신명재 씨(64)는 4월 25일 ‘1분기 햇빛 연금’으로 195만 원을 받았다. 아내와 자녀 셋을 포함한 5인 가족에게 1인당 39만 원씩 지급된 것으로, 지역화폐(1004섬 신안상품권)로 받아 농자재 외상값을 갚는 데 썼다. 신 씨는 “1년에 네 번 나오는 햇빛 연금은 가뭄에 단비 같은 돈”이라고 말했다.
● 햇빛과 바람이 주민 소득으로
신안의 햇빛 연금은 전남도가 주도해 설계한 ‘에너지 기본소득’ 정책의 대표 사례다. 풍부한 햇빛과 바람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을 지역 주민과 나누는 방식으로, 지방정부가 먼저 실험에 나서 국가 정책화로 이어진 모델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신안 사례를 핵심 공약으로 채택했고,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관련 부처에 전국 확산을 주문한 상태다.
신안군은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태양광 발전 특수목적법인(SPC)에 투자자로 참여하도록 했다. 출자금은 지자체가 은행 대출을 주선하고, 수익은 분기별로 배당된다. 발전소 인근 거주자일수록 액수가 크다. 현재 사옥도·안좌도·비금도·지도 등 6개 섬 주민 1만6341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군 전체 인구(3만8137명)의 43%에 달하며, 누적 지급액은 247억 원을 넘겼다.
올 하반기부터는 해상풍력을 활용한 ‘바람 연금’도 추진된다. 2031년까지 8.2GW(기가와트) 해상풍력이 완공되면 군민 1인당 월 5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이 같은 소득 모델은 인구 유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안좌면에 사는 이금배 씨(79)는 “3년 전엔 빈집이 10채 넘었는데 지금은 다 찼다”며 “30, 40대가 들어오며 마을이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신안에 이어 영광군도 전국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에너지 공유부 기반 기본소득’을 시행한다. 태양광·해상풍력 등 11GW 규모의 공공 자원에서 발생한 수익을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전 군민에게 정기 지급하는 방식이다. 강인호 조선대 행정복지학부 교수는 “영광군의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 수단이 아닌 자원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탈중앙형 복지 실험”이라며 “지역의 자산을 군민의 소득으로 전환하는 한국형 지속 가능 복지 모델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남도는 정책 확산을 위해 2023년 ‘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조례’를 제정했다. 사업자 입장에선 인허가가 수월해지고, 주민은 수익을 분배받는 ‘윈윈’ 구조다. 현재 나주·영암·무안·영광·완도·신안 등 6개 시군이 조례를 제정했고, 8곳은 심의 또는 검토 중이다.
●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전국 1위
햇빛과 바람 등에서 얻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과제다. 국내 자연 조건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생산에 가장 유리한 지역으로 전남이 손꼽힌다.
전남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은 2024년 말 기준 6.6GW에 달한다. 이는 전국 설비 용량의 19%에 해당하는 규모다. 신안 해역에 조성 중인 3.2GW 규모의 해상풍력 집적화 단지와 발전 수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태양광 발전단지 등을 기반으로 전남은 ‘에너지의 수도’로 불린다. 국가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인 180TWh(테라와트시) 가운데 37%를 전남이 책임질 정도로 발전량도 풍부하다.
전남도는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23GW 규모의 해상·육상 풍력과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생산된 수익을 도민과 나누는 ‘에너지 기본소득’ 1조 원 시대를 열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혁신 모델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과 RE100(재생에너지 100% 활용)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해외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하이퍼스케일러’ 유치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전남도는 재생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운반하기 위한 인공지능(AI) 기반 전력망을 확충해 계통 포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전남에서 생산된 전력의 절반은 수도권에 공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역에서 활용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상을 국가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해상풍력발전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남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2035년까지 30GW 규모의 풍력발전단지 조성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현구 전남도 에너지산업국장은 “전남은 새 정부의 태양광·해상풍력 확산 기조에 발맞춰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등 다양한 정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왔다”며 “‘에너지 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생에너지 생태계 조성과 에너지 기본소득 실현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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