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으로 간 도시청년 7인이 그곳에서 깨닫고 얻은 것은? [그 마을엔 청년이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3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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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23회
예비 사단법인 농, 2025 농게더링 포럼 르포

11일 오후 충북 괴산군 청년마을 ‘뭐하농스’에 전국에서 8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뭐하농스 이지현 대표가 주축이 되어 2023년 11월 첫발을 내디딘 농촌 청년 네트워크가 ‘사단법인 농’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2025년 ‘농게더링 포럼’을 개최한 것이다. 이 대표를 비롯해 이번 행사를 주도한 일곱 명의 청년 농업인들은 각자가 경험한 농촌살이의 시작과 과정, 소회와 포부 등을 글로 풀어 묶은 ‘우리 마음속엔 저마다의 농이 있지’라는 작은 산문집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들은 포럼 1세션에 연사로 나와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는데, 발표와 책의 글을 가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면 이렇다.

2025 농게더링 포럼에 참석한 청년 7인이 1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민 임성민 채수인 박세원 편채원 정지영 이지현 대표. 괴산=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기자 : 사단법인을 준비하는 ‘농’은 어떤 단체인가요?

이지현 대표 : 각자의 자리에서 농(農)을 살아내는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경험을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며, 함께 성장해가는 공동체에요. ‘농’이라는 키워드 아래, 우리는 지역과 세대를 넘어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자 : 도시에 살다가 농촌살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정지영 전남 고흥 청년마을 ‘신촌꿈이룸’ 대표 : 그냥 쉬고 싶었어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나 봐요. 신촌마을에서의 삶은 계획된 귀농도, 멋진 로망도 아니었어요. 도시에서 흩어진 내 삶의 조각들을 다시 주워 담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처절한 복원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바로 그 시간여행이야말로 내 인생의 진짜 출발점이었어요.

박영민 경남 거창 청년마을 ‘거창한농부’ 대표 : 시골이 좋아서 귀농했느냐고요? Yes. 하지만 시골이 좋아서 농업을 선택한 것만은 아닙니다. ‘건강한 농업’은 다가올 시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해답 중 하나라 믿기 때문에 기꺼이 이 길을 택했어요. 어쩌면 농촌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면서요. 도시는 떠났지만, 그곳에서 배운 경험과 리듬은 지금 이 들판과 햇살 위에 고스란히 얹혀 있습니다.

2025 농게더링 포럼 참석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괴산=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기자 : 농촌 살이에서 어떤 의미를 얻었나요?

박세원 경남 함양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 대표 : 그 길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어요.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성장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 미래 세대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는 건강한 땅 위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나아가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어요.

기자 : 깨달은 것도 많겠군요?

채수인 전남 고흥 ‘순수유자’ 대표 : 결실(結實)이라는 말이 단순한 성취의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잘 익은 유자 하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날들을 묵묵히 견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작고 단단한 보상이었어요.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수확을 기쁨이라 부르기보다, 조용한 경의로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임성민 경남 하동 ‘자연저장소’ 대표 :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거래장터에 참여하느라 밤샘 준비를 하던 날들,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눈 고민과 시행착오, 그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농업이란 단순히 생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공, 유통, 마케팅, 교육까지 연결된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결국 다 ‘사람’ 덕분이라는 것도요.

2023년 11월 첫 모임 이후 농게더링 포럼 활동 내용을 담은 현수막. 괴산=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이지현 대표 : ‘함께’가 무엇인지, 농사를 시작한 이후에야 그 의미를 제대로 배우고 있어요. 도시에서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대부분 경쟁하거나 시너지를 기대하는 방식이었어요. 친구지만 이겨야 했고, 동료지만 성과를 위해 부딪쳐야 했어요. 그런 인연들이 내가는 우선이었어요. 성취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가족은 너무 소중했지만 늘 뒷전으로 밀려 있었고 결국 멀어지기도 했어요. 사랑하지만 뒷순위였던 사람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얼마나 기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요. 오직 성과와 목표만을 좇으며 달리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다 농촌으로 내려왔지요. 이곳에서는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우리를 초대하는 농무 친구들이 있었고 불완전한 나를 담담히 받아주는 선생님들이 있었어요. 나는 해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내 곁에 오면 온통 뒤치다꺼리할 일뿐이었는데, 그들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고 자리를 함께 해 주었어요.

기자 : 그래서 그런 경험들을 책으로 내게 된 거군요.

편채원 작가 (강원 영월) : 모든 성장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여정 그 자체가 여행이지요. 삶은 어떠한 결과를 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 그 자체임을 깨닫습니다. 이 산문집은 그러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고,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독자들이 이 글들 속에서 잠시나마 그런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각자의 땅에 씨앗을 심고, 가꾸어온 의미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2025 농게더링 포럼에 참석한 경희대 재학생들이 이지현 대표(맨 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괴산=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88명의 참가자 대부분이 농촌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에 나선 일곱 명의 경험에 격한 공감을 나타냈다. 현장에는 괴산 뭐하농스처럼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영천 홍성 영덕 보은 강릉 세종 홍천 청년마을 대표들도 참석해 응원했다. 환경과 생태를 공부하는 한국과 외국 국적의 경희대 학생들도 참가해 경청했다. 토론회 2세션에서는 일본에서 유사한 활동을 하는 농라이퍼즈 대표와의 화상 대담이 이어졌다. 3세션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관계자와 환경 생태학자 등이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해 이들의 활동을 격려했다.

이지현 대표는 “사단법인 농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며 “농촌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사람, 지역에서 살아가거나 살아가고 싶은 농업 실천자 활동가 연구자 창업자,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결망을 통해 서로의 가능성을 키우고 싶은 사람,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같이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라도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문의는 nonggather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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