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결혼 3년째를 맞은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병원을 찾았다. 박 씨 부부는 아직 젊기 때문에 자연임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자 형성 이상’으로 난임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내가 난임의 원인일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내도 여러 검사를 받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정신적 충격도 클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성 난임 환자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었다. 최근 남성 난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검사가 늘었고 만혼,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생활 방식 변화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 작년 남성 난임 환자 10만 명 넘어
27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남성 난임 진단자는 지난해 10만8343명으로 2018년(7만8370명)보다 약 38.3% 늘었다. 같은 기간 난임 시술을 받은 남성 환자는 5만6117명에서 7만4654명으로 33% 늘었다. 난임 관련 진료비도 지난해 198억 원으로 2018년(104억 원)과 비교할 때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난임을 일으키는 질환을 앓는 남성도 늘었다. 호르몬 이상으로 정자 형성과 성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진료받은 남성은 2018년 1만4469명에서 지난해 2만9356명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음낭정맥류’ 환자도 같은 기간 1만2549명에서 1만7087명으로 늘었다.
다만 대체로 남성 난임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식습관 불량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남철 부산대 비뇨기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낮춰 생식 기능을 저하하고 술과 담배는 정자 수와 운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연령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태진 일산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30대 중반이면 전립선 비대증 등 남성 질환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생식능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반면 출산율은 지난해 7월 반등한 뒤 12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가임기 부부가 늘어난 것도 난임 진단 증가의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어려움 말하지 않는 남성 난임 환자
남성 난임 환자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받지만 터놓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난임 상담 중 남성 비율은 12.3%에 그쳤다. 여성과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 등도 활발하지 않다. 전명욱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장은 “난임 판정을 받으면 남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우울감과 자존감 저하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서도 여성 난임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남성 난임과 관련된 치료와 수술은 체외수정, 인공수정 등 여성의 보조생식술로 이어지지 않으면 정부 난임부부시술비 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정자증 환자는 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는데, 이때 정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자를 찾기 위해 사용되는 수술 현미경 사용료, 특수재료비, 조직처리 및 검사비 등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최대 300만 원에 달해 여러 차례 수술할 경우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3차례 수술을 받은 30대 남성 김모 씨는 “두 번은 정자를 얻었지만 시험관 시술에 실패했고, 세 번째 수술에서는 정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미 많은 돈을 쓴 상태에서 지원도 없어 경제적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남성이 난임을 논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남성 요인 난임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은미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며 “난임 남성에 대한 지원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