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력 비판 재갈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 멈추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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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언론의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의 중과실만 인정되면 고의나 악의가 없더라도 배상 책임을 지우고, 배상액의 상한도 두지 않겠다고 한다. 여당은 ‘여론 왜곡을 바로잡고 국민 피해를 구제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개정안을 뜯어보면 권력 비판 보도를 봉쇄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에 가깝다.

민주당이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진 중인 개정안의 핵심은 오보로 인한 기본 손해액을 정하되 고의성의 정도와 피해의 중대성 등에 따라 배상액을 기본 손해액의 N배씩 가중해 부과하는 ‘배액 손해배상제’다. 기본 손해액이 1000만 원이라면 파장이 큰 심각한 오보의 경우 수억 원대 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피해액의 최대 3∼5배인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려던 2021년 여당 언론중재법 개정안보다 훨씬 강화된 법안이다. 당시 법안에 대해 국제언론단체는 ‘언론 탄압’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보다 센 이번 법안에 대해선 뭐라 하겠나.

개정안의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점도 문제다. 대개 언론 보도의 진위가 확인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역대 정부의 국정 농단이나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한 폭로도 처음엔 오보 취급을 받다가 뒤늦게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정부 기관과 정치인들이 불리한 언론 보도가 나오면 승소하든 말든 추가 보도부터 막고 보자며 ‘전략적 봉쇄 소송’을 하는 사례가 흔하다. 여당은 봉쇄 소송 방지를 위해 배액 손해배상 청구 시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신청을 우선 거치도록 하는 견제 장치를 뒀다고 하나 배액 손배소로 가는 우회로는 여전히 열려 있어 권력 감시 약화를 피할 길이 없다.

한국의 경우 언론의 허위 조작 보도는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고 민법상 손해배상까지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3∼5배 배상도 모자라 무제한 배상제를 허용하는 것은 심각한 언론자유 침해이자 국민의 알권리 침해다. 야당은 물론 언론 현업 단체들도 “언론 징벌법, 언론 억압법, 취재 봉쇄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여당은 힘 있는 사람들만 좋아할 입법을 멈춰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언론중재법#허위 조작 보도#언론 자유#국민 알권리#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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