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처음 시도한 건 노무현 정부 때다. 2003년부터 일명 ‘362사업’으로 불린 핵잠 건조를 비밀리에 추진하다 무산됐다. 미국이 핵 개발 우려를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트럼프 1기 때 문재인 정부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우리가 핵잠의 동력원인 소형 원자로 기술과 잠수함 건조 능력을 갖춘 만큼 원자로를 돌릴 핵연료, 즉 농축우라늄 공급을 요청했지만 비확산 원칙을 내세운 미국에 막혔다. 그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전격 승인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연료 공급을 공개 요청한 지 하루 만이다.
▷한국은 잠수함이 20여 척 있다. 하지만 모두 디젤엔진이다. 수시로 물 밖으로 나와야 디젤터빈을 돌릴 산소를 얻고 축전지를 충전할 수 있다. 적국에 들키기 쉽다. 핵잠은 농축우라늄이 다 탈 때까지 최대 30년간 연료를 바꿀 필요가 없다. 작전 중 물 위로 올라올 일이 없다. 최대 속도도 디젤 방식보다 3배 이상 빠르다. 북한 해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핵미사일 기지를 감시할 수 있다. 미국의 거부에도 끈질기게 핵잠 허용을 요구해 온 배경이다.
▷은밀하게 적국 근해에 접근하는 핵잠은 현대전의 판도를 가를 게임 체인저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인도 등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은이 2021년 확보를 지시하더니 올 3월 건조 중인 동체 일부를 공개했다. 핵심인 소형 원자로 기술을 확보한 정황은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파병 대가로 기술을 이전하면 완성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북한이 핵잠을 완성하면 우리 영해는 속수무책으로 뚫린다. 미국에 이어 잠수함 보유 2위인 중국은 압도적 건조 능력으로 차세대 핵잠 개발에 달려들어 남중국해, 동중국해뿐 아니라 서해까지 잠항 반경을 넓히고 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운 다카이치 내각도 최근 출범하자마자 핵잠 개발을 시사했다. 미중 패권 경쟁, 북한의 핵 개발, 동맹국도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라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맞물려 동북아 안보 지형에 격변을 일으키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해양 자강(自強)’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핵잠은 지금부터 만들어도 약 10년이 걸린다. 정부가 미국에서 핵연료를 공급받아 여건을 갖춘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에 속도를 높이려 한 이유다. 그런데 트럼프는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건조 장소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미 조선업이 대대적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 했다. 핵잠 건조를 쇠락한 미 조선업 재건의 기회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는 ‘마스가’의 상징이지만 잠수함 건조 시설이 없다. 우리 해군은 완성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잠 개발에 차질이 없도록 한미가 분명히 정리해야 할 대목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