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 화재로 중단됐던 우체국 우편서비스 일부가 재개된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에 착불소포, 신선식품 등의 접수 불가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부 업무 시스템의 약 40%를 마비시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사고가 정전 때 전원 공급 용도로 설치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산 시스템뿐 아니라 전기차, 휴대전화 등 우리 실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 기술에서 자타 공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데도, 안전관리 능력 면에선 후진국 수준의 허점을 보인 셈이 됐다.
이번 화재는 26일 오후 관리원 본원 5층 전산실 서버 옆에 있던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 중 배터리 한 개에서 불꽃이 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제작해 2014년 공급한 배터리들로, 사용 기간 10년이 넘었고 판매·관리 업체인 LG CNS가 작년 6월 교체를 권고한 노후 장비였다. 배터리 이전 작업에 투입된 13명의 인원도 지역 소규모 외주업체 직원 및 아르바이트생들로, 사소한 실수가 화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전산실 내 배터리와 서버의 간격이 60cm에 불과해 화재가 곧바로 시스템으로 번졌고, 좁은 공간 탓에 소방작업도 심하게 지연됐다. 거의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2022년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 이후 정부가 예방 매뉴얼을 제작했지만 올해는 권고에 그치고, 내년부터 의무화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서둘렀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방치한 것이다.
배터리 관련 사고는 이미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올해 상반기에만 29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6월엔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올해 8월에는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서 충전 중이던 전동스쿠터 배터리가 폭발해 모자(母子)가 숨지고 다수의 주민들이 다쳤다.
정부가 운영하는 전산 시스템의 배터리 관리가 이렇게 허술하다면 다른 곳이라고 안전할 거란 보장이 없다. 대다수 전산시설에 비슷한 배터리가 사용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관련 시설들을 전수 점검하고, 운영자와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을 제고해야 한다. 정부와 관련 기업들은 배터리로 인한 재난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경보 시스템, 화재의 조기 진압을 위한 솔루션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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