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관계 발전이 한미일 공조 강화로도 이어지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두 정상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공동 발표문에는 “이시바 총리가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음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양국 관계의 연속성, 나아가 지속 가능성을 모색한 만남으로 평가할 만하다. 과거 양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일 관계가 크게 출렁거렸던 게 사실이다. 이 대통령도 그간 전임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일에 앞서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국가 간 합의를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며 실용 외교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런 대일 접근은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경제·통상 질서가 급변하는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을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양국 모두에 만만찮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고도화하는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일,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 역시 여전하다. 더욱이 미국발 관세 태풍에 대처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한일 간 소통의 필요성은 한층 커졌다.
다만 양국 관계의 진전을 위한 구체적 정책 조율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는 발표문에만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과거 역사 인식 계승’ 언급이 전부였다. 전임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을 통해 물컵의 절반을 먼저 채웠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 절반을 채우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미국이 원하는 중국 견제를 두고도 “대만 유사(有事)가 곧 일본 유사”라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미중 충돌보다 북한 도발 억제에 집중해야 하는 형편이다.
한일 간엔 뛰어넘어야 할 역사적 지정학적 인식 차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두 정상은 양국 관계의 뒷걸음질을 막고 미래 협력의 비전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이런 긍정적 메시지로 상호 신뢰를 쌓아갈 때 이견을 해결할 힘과 용기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선순환의 진전을 차근차근 이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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